* 일상생활사역연구소에서 발행하는 Seize Life 3호 (2009년 8월)에 실린 전성민 연구위원의 “새로운 신학교가 올까”라는 글을 5회에 나누어 연재합니다. 이 글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설립되기 얼마 전에 발표된 글입니다. 이 글에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설립되게 된 문제의식과 느헤미야가 세워지기까지 직간접적인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의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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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느헤미야들을 위하여)
V. 결론
신학교에서 일상생활신학이 그 근본정신에 어울리게 가르쳐지려면 신학교육의 대상에 대한 패러다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에스라에서 느헤미야로” 혹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함께”라는 표현으로 담아보고자 한다. 말씀의 사역자였던 제사장 에스라 뿐 아니라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며 매일매일 성벽을 쌓았던 “평신도” 느헤미야와 그의 사람들도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자신의 사역을 행했다는 사실이 기억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학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조를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 구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보냄받는 신학교”라는 구절로 정리하고 싶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신학이 신학 교육의 중요한 내용이며 그 일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교육의 핵심 대상이라면, 신학교육의 방식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끌어모으려 하는 크리스텐덤적인 신학교가 아니라 일상의 자리로 찾아가는 성육신적 구조를 가지는 보냄받은 신학교가 어쩌면 일상생활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의 가장 적절한 구조일 수 있다.
맨 처음 글을 시작할 때는 “새로운 신학교가 온다”라는 담대한 제목을 붙였었다. 그러나 글을 점점 더 쓰면서 그러한 확신은 어느덧 “새로운 신학교가 올까?”라는 질문으로 흐려졌다. 과연 올 수 있을까? 대답은 우리의 상상력과 실험정신에 달렸다. 그리고 또한 아무쪼록 무엇을 상상하던 하나님께서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