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고자 하는 동기는 궁극적으로 열방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열방은 실제로 무엇을 볼 것인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은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눈에 보이는가?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에 기초해서 세워진 사회의 실제적 증거만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적 주장들…과 …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사회 윤리 간에는 중대한 관련성이 있다. 세상은 … 후자를 볼 떄에만 전자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 478).
꼬박꼬박 챙기지는 못하지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나오면 꼭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생활의 달인”이다. 어떤 일을 수년에서 수십 년간 집중해 온 달인들의 완벽한 ‘퍼포먼스’들은 나의 시선을 고정시킬 뿐 아니라 때론 경외감까지 들게 만든다.
성경 전체를 선교라는 관점에서 읽기, 이 일을 해 내는 데 크리스토퍼 라이트만한 달인이 또 있을까 싶다. 먼저 그는 정통한 구약학자로, BST(Bible Speaks Today) 시리즈의 「에스겔 강해」나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이상 한국 IVP)를 통해 면밀한 주해에 기초해 성경 본문이 어떻게 현대에 적용될 수 있을지 잘 보여 준다. 그는 또한 선교사이기도 했다. 인도에서 신학교 교수로 5년간 일하면서 ‘선교지’의 상황을 직접 경험했다(그의 부모님도 브라질 선교사였다). 그는 영국에 돌아온 후 타문화선교 훈련기관인 열방 기독 대학(All Nations Christian College)의 학장으로 일하며 선교지에서의 경험과 학문적 배경을 통합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 뿌려진 씨앗의 열매가 바로 「하나님의 선교」다.
「하나님의 선교」에서 라이트는 성경의 선교적 해석을 제시한다. 그는 선교적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 일의 중요성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주신 깨달음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이야기”(메시아적 해석)이며 또한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이야기”(선교적 해석)임을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눅 24:44-48).
이러한 선교적 해석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라이트는 “성경이 온통 선교에 관한 것”임을 성공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나열하는 식이 결코 아니다. 그는, ‘선교’ 하면 ‘외국에서 전도하기’를 주로 떠올리는 우리에게, 선교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예수를 통해 열방에 전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바라시는 복을 충만히” 누리게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는 신약에 와서야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흩어진 열방에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 목적은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의와 공도를 행하는 목적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그로 인해 세상이 복을 받는 것―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창 18:19). 요컨대, 특정한 존재로 선택되어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예를 들어, 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의도대로 윤리적인 삶을 살 때 그것을 보는 열방이 하나님께로 이끌려 하나님을 아는 충만한 지식 가운데 계획된 복을 누리게 하는 것, 이것이 선교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라이트의 핵심 주장을 만난다. 윤리가 선택의 목적이며, 동시에 선교의 기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설명에 수긍이 가는가? 아니면 아직도 질문이 남는가? 라이트는 이 주제들에 관한 오랜 강의 경험을 통해 독자들의 궁금증과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라이트가 집어내는 우리의 질문은 이렇다. “하지만 이것이 신약과 무슨 상관이 있죠?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구출해 내지 않으셨잖아요. 실제로 예수님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셨는데요. 바울은 노예 해방 운동을 하지도 않았고요. 신약의 선교가 전도만은 아니라 해도, 일차적으로 전도로 봐야 하지 않나요?” 이러한 우리의 전형적인 그러나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던 질문에 라이트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친절하고 진지하게 답해 준다(그 답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 보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면서 라이트는 선교와 ‘총체적 선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는 정의상 ‘총체적’이며 따라서 ‘총체적 선교’가 사실상 선교다”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회복되어 복을 누려야 할 인간과 세상의 본질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를 가질 때, 우리는 십자가가 전도뿐 아니라 소위 사회 참여의 기초와 근거도 된다는 그의 주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라이트의 주장은 소위 전도와 사회 참여, 타민족 선교와 사회 선교를 구분하느라 분열되고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을 성경 전체의 틀 속에서 정리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하게 만드는 것, 복음 전파가 이 이상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 전체가 제시하는 복음은 인간과 세상을 창조의 풍성함으로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을 꿈꾸며, 모든 열방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축복―창조적이며 관계적인, 선교적이며 역사적인, 언약적이며 윤리적인, 다국적이며 기독론적인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타민족들에 대한 관심은 신약에만 있고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사람과 민족을 선택하신 것이 모든 민족에게 자신을 알리고 복을 주시려는 여호와의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과,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이 열방이 주께 돌아오는 날을 꿈꾸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선교는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 선교 사역을 요구하기 전에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자신의 위대한 선교”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얼마나 선교를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해 왔는지를 명확히 깨닫게 되는 것은 라이트가 ‘땅’을 선교의 무대 중 하나로 설명할 때이다. 생태를 보존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중요한 부분인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선교를 말하는 구절을 찾으라고 할 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이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만 떠오른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성경 전체가 자신을 열방에 알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웅변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달인의 ‘퍼포먼스’는 보는 이에게 경외감까지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의 선교」는 저자의 삶 가운데 체화된 선교와 관련된 여러 주제가 성경 전체에 근거한 면밀한 학문적 논의 속에 녹아든 달인의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 「하나님의 선교」는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와 더불어 그의 삶과 학문을 통합한 일생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이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선교를 정말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성경과 함께 읽으며 공부해야 할 것이다. 분명 하나님의 거대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하나님의 선교’로 우리를 부르고 있음을 또한 깨달을 것이다.
* 전성민 연구위원이 IVP 북뉴스 2010년 5-6월호 (통권 92호)에 쓴 글입니다.
전성민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세계관 및 구약학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초빙연구위원